"황제가 물가를 정한다."
지금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서기 301년의 로마 제국에선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라는 황제가 있었다.
📉 로마의 위기와 경제 혼란
3세기 말, 로마 제국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내전과 침입, 황제들의 잦은 교체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지속됐고,
전쟁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가는 이를 메우기 위해 동전의 금속 함량을 줄이고, 대신 더 많은 화폐를 발행했다.
하지만 이건 곧 화폐 가치 하락 → 물가 상승 → 신뢰 붕괴라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즉,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인플레이션의 고전적 사례가 이때 등장한 것이다.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최고 가격 칙령'
이 혼란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디오클레티아누스.
그는 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상 초유의 조치를 단행한다.
바로, 모든 물가를 국가가 정하는 것.
서기 301년, 그는 『최고 가격 칙령(Edictum de Pretiis Rerum Venalium)』을 발표한다.
이 법은 식료품, 옷감, 운송비, 일당, 서비스 요금까지 수천 가지 항목의 최고 가격을 법으로 제한했다.
예를 들어:
- 밀 1모둠 가격: 얼마 이상 받지 말 것
- 구두 장인의 하루 품삯: 정해진 수준 이상 불가
이를 어기면 사형 또는 추방이라는 엄청난 처벌까지 뒤따랐다.
💥 법이 시장을 이길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상인들은 물건을 시장에서 내놓지 않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암시장과 밀거래에 의존하게 되었다.
가격 통제가 오히려 물자 부족과 신뢰 붕괴를 심화시킨 것.
사람들은 국가의 정해진 가격 대신, 자신들의 체감 가치를 기준으로 거래하기 시작했고,
결국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시도는 수년 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 역사에서 배운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실험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수는 있지만, 시장의 감정을 억누르기는 어렵다."
물론 현대 국가들은 세금, 보조금, 기준 금리 등을 통해 시장에 개입하지만,
가격 자체를 고정시키는 방식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이 사례는 보여준다.
🧾 마무리하며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아니다.
그 이면엔 신뢰, 가치, 교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 있다.
2천 년 전 로마 황제의 고군분투는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그의 법은 사라졌지만,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격은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국가인가, 시장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인가?"